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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지배와 법치주의>

by vividko 2023. 3. 7.

 

 

5.1.1. 법의 지배와 법치주의 

 

법치주의 원리는 헌법원리 중 하나이다. 법치주의를 중시하는 이유는 이 원리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법치주의 혹은 법치국가는 독일의 용어인 데 비해, 영국에서는 법의 지배(rule of law)라고 한다.

영국에서는 일찍부터 법원의 판결에 의해 축적된 보통법(common law)과 의회의 법률 이 군주조차 구속시키는 원리로 자리 잡았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의회와 군 주 사이에 일전이 불가피하였다. 에드워드 코크(Edward Coke)는 "군주도 법 아래에 있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데, 이 말은 군주도 법원의 커먼로 (Common law)와 의회의 법률(Act)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유명한 1628년의 권리청원이고, 이는 청교도혁명의 발단이 되었다. 군주의 자의적 지배(rule of arbitrariness)가 아닌 법의 지배원리를 확립함으로써 의회와 법원을 통한 시민지배의 시대를 열었다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우리는 법의 지배를 단순히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국민주권과 기본권보장을 위한 법의 지배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영국의 법의 지배는 처음부터 실질적 법치주의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발달하였다.


영국에서 법의 지배의 전통을 헌법적 차원에서 재정리한 학자는 다이시 (Albert Dicey)이다. 그는 영국은 성문헌법전이 없어도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라고 하면서, 영국의 민주주의와 권리보장에 대한 오랜 전통이 바로 법의 지배이자 헌법이라고 보았다. 국가권력은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시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으며, 법률은 의회주권의 원칙에 입각해서 제정되는 것이고, 국가권력의 행사에서 재량을 최소화하며, 법 앞의 평등원칙이 관철되어 국민이나 국가기관을 불문하고 일반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며, 국가기관의 지위는 국민들 사이에 공유된 헌법적 관습이나 불문의 전통과 신념에 의하여 정해 져 있다. 입법, 사법, 행정, 그리고 국민의 기본권에 해당하는 모든 것이 영국 헌법이자 법의 지배라는 것이다. 요컨대 법의 지배는 불문헌법 국가인 영국에서 입헌주의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

* 알버트 다이시, 안경환, 김종철 옮김, [헌법학입문], 경세원, 1993

 

그에 비하면 독일의 법치국가(Rechisstaat) 원리는 대단히 형식적이었다. 즉, 법률의 우위, 법률에 의한 행정(행정법치주의), 법률에 의한 재판이라는 3박자로 표현된 형식적 법치국가였다. 의회가 제정한 법률을 중시한 것인데, 이의가 제정한 범윤의 목적이나 내용을 묻지 않았다. 형식적 법치주의는 나지 의 등장과 함께 그 허점이 드러났다. 절차와 형식의 합법성을 갖춘 채 나치는 600만 유대인을 학살하고 전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갔다는 불법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실질적 법치주의 원리로 전회하였다. 실질적 법치국가라 함은 인간의 존엄성 존중, 실질적 평등과 같은 정의의 실현을 그 내용으로 하는 법에 의거한 통치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를 말한다. 이제는 통치의 형식적 합법성보다 실질적 정당성을 강조하는 시대로 전환된 것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과거의 근대 시민국가 헌법에서 현대 사회복지국가 헌법으 로 넘어오면서 함께 이루어진 현상이다. 미국은 독립과 함께 성문헌법전을 가졌으며, 헌법의 최고성을 인정하였고, 동시에 사법심사제를 정착시킨 나라이다. 미국의 입헌주의는 그 후 전 세계로 확대되었고, 유럽 국가들조차 위헌법률심사제가 보편화되었다. 오늘날의 법의 지배는 단순히 의회법률의 우위 차원을 넘어서 헌법의 우위시대에 들어섰다 고 말할 수 있다.

 

5.1.2. 형식적 법치주의


영국에서 법의 지배관념이 의회주권을 배경으로 구축되고 있던 반면, 의회주권이 확보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이 형성되지 못한 독일에서는 의회주의 원리를 간접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법치국가관님이 형성되었다.
일반적으로 법치국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으로 알려진 몰(Robert v. Mohl)은 법치국가를 개인의 계약으로 구성되고 그 활동이 개인의 자유를 위 해 제한되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로서 명확한 법률을 제정하고 신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법원을 설치하는 국가"로 봄으로써 이성법에 기초한 이성의 국가를 법치국가로 여겼다. 19세기 초반의 이러한 이성법적 법치국가론은 1848년 3 월 혁명과 그 성과물인 1849년의 프랑크푸르트 헌법이 시행되지 못하자, 의회 주권을 확립하지 못한 시민계급이 법률의 지배를 통해서 의회주의 원리를 실 현하기 위한 정치적 방어개념으로 축소되었다. 즉, 법치국가의 핵심을 ' 행정에 대한 사법적 통제' 라거나 '행정의 법률적 합성' 등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이러 한 자유주의적 법치국가의 기본전제는 무엇보다도 국가와 사회의 이원적 대 립구조이다.
형식적 법치국가관념은 비스마르크 체제에서는 물론 바이마르 체제에 와 서도 주류 헌법교재의 저자였던 국법실증주의자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의회가 더 이상 국왕의 들러리 기관이 아니고 민주적으로 구성됨으로 써 진정한 의미의 의회주권이 확립된 상황에서는 법치국가의 기능도 달라지 게 된다. 형식적 법치국가의 연장선에 있는 바이마르 헌법체제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바이마르 헌법체제의 민주주의적 잠재력 은 과소평가될 수 없다. 의회주권이 확립되었기 때문에 이때의 법치국가는 의 회주의를 확인하고 보완하는 법기술적 장치에 지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형식적 법치국가와 실질적 법치국가의 구별은 불필요해지 고, 법치행정과 법치사법은 '민주주의적 법치국가'의 징표로 기능하게 된다.
그러나 바이마르 헌법상의 의회 중심의 민주주의 성격은 아쉽게도 히틀러에 의해 유린당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독일도 본격적인 위헌법률심사 제 시대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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